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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스 : 광치휴양림 → 옹녀폭포 → 솔봉 → 생태식물원(7.8km/4시간 30분)
4코스 : 광치휴양림 → 옹녀폭포 → 용늪 → 도솔산 → 도솔산전투위령비(167.km/8시간)
(부대협의후 등산 가능)
대암산
용늪~정상~용늪~도솔산~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
울울창창 원시림 속 형형색색 야생화
글 김 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양구읍에서 팔랑리를 지나 해안면(亥安面)으로 가는 국도 43번을 따르다 453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고 올라가다보면 철조망 문으로 닫힌 우측길목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대암산 용늪으로 오르는 ‘대암통문’이다. 잠긴 문을 열자 비포장도로는 나사의 홈처럼 산을 뱅글뱅글 돌며 산꼭대기를 향한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군사도로로, 산허리를 대충 깎아 길을 냈다. 당장이라도 낙석이 떨어질 것 같았고 사정없이 덜컹이는 차는 자칫하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무사히 해발고도 1300m의 대암산 능선에 올라섰다. 별일 없이 통과하리라 생각했던 21보병사단 위병소에서 차를 멈춰야 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의 출입허가 공문이 있었지만 군부대에 연락해 본 위병들은 “부대에서는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전화를 걸어 원주지방환경청에서는 군부대에 연락을 했고 군부대는 환경청의 연락을 받지 못 했다는 말을 서로에게 전했다. 결국은 군부대에 직접 허가를 받았다. 1시간을 채울 즈음에야 비로소 통과할 수 있었다.
대암산의 보물이자 족쇄, 용늪
대암산 산행은 양구군청 생태환경산림과 이형민, 박관우씨가 대암산길 안내와 자생하는 식물들을 소개하기 위해 함께 했다. 양구생태식물원을 관리하는 이형민씨도 용늪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까다로운 절차에 출입조차도 대단히 제한적인 것은 대암산 용늪이 남한 유일의 고층습원이자 우리나라가 람사르협약에 가입하면서 등록한 제1호 습지이기 때문이다. 용늪의 생태적 가치는 대암산을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 리스트에 올리게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습지보호지역이자 천연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각종 규제에 옭매게했다. 2010년 7월 31일이면 이 제한 기간이 끝나는 터라 최근 용늪과 대암산 개방을 두고 양구군과 환경청이 협의에 협의를 거듭하고 있다.
“양구군에선 제한적이라도 개방을 원하고 있죠. 헌데 과거에 잠시 개방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통 밟고 다니고 여기저기 쓰레기를 버려서 문제가 됐었어요. 그때 좋은 선례를 못 남겨서…”
능선 상에 늪이 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능선은 군시설물과 운동장이 자리하고도 여유 공간이 있을 정도로 넓고 평평했다. 군부대 운동장을 가로지르니 용늪까지 작년에 돌을 깔아 조성한 길이 잘 정돈되어 있다. 군부대와 주변 군사도로의 토사 때문에 훼손이 심해 아예 들어가 볼 수 없게 막아 놓은 작은 용늪을 지나면 큰 용늪 전망대가 나온다. 울타리가 키보다 높은 터라 약간 높은 위치의 전망대에서는 그리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나가면 용늪 관리소와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은 용늪입구와 정상방향이고 직진 길은 계속해서 남쪽 능선으로 향하는 길이다. 원주지방환경청에서는 용늪관리소를 두고 주민감시단을 구성하여 용늪 무단 출입자를 감시한다. 관리소 위에 CCTV를 통해 원주지방환경청에서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대암산에는 모형 동물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등산객들에게 재미와 놀람을 준다. 하산하는 일행을 내려다보는 산양모형
먼저 관리소에 들러 출입허가공문을 제출해 출입을 허락받았다. 실제로 본 용늪은 용이 살았으며, 명주실 한 타래가 빠질 정도의 깊이라는 전설이 무색할 정도로 사초가 무성한 초원으로만 보인다. 일본의 하코다산이나 하치만타이 등의 광활한 고원습지를 상상했다면 막상 그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실망하기 쉽다. 목도가 용늪을 반 바퀴 정도 돌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는데 천천히 구경을 한다 해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 길이다. 여러 야생화가 피어 있었지만 야생화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탓에 기자는 ‘눈 뜬 장님 격’. 큰 감흥 없이 간간히 보이는 물웅덩이를 보며 목도를 따라 걷고 있는데 박관우씨가 “비로용담이다”며 목도 위에 주저앉는다. 쑥 내민 줄기에 보랏빛 꽃을 단 야생화였다. 뿌리가 쓴 맛이 나서 용의 쓸개라는 뜻으로 이름 붙은 용담이다.
“용담? 용담은 흔하지 않나요? 다른 산에서도 용담은 많이 봤는데…”
“용담은 흔한데 이 비로용담은 희귀식물이에요.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해서 비로용담이죠. 북부지방과 고산지대에 자라는 고산식물이라, 남한에서는 대암산 용늪에서만 서식한다는 알고 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보네요.”
박관우씨는 연신 감탄을 하고, 이형민씨는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기 바쁘다. 그제야 비로용담을 자세히 봤다. 가는 줄기에 비해 제법 큰 보랏빛 꽃을 달고 있는데 대여섯 개로 갈라진 꽃잎 끝이 별모양으로 앙증맞다. 식물을 아는 사람과 동행했기에 그냥 지나칠 뻔했던 귀한 야생화를 보고 이름까지 알게 됐다. 용늪 안내판에는 멸종 위기종인 기생꽃과 특이식물인 끈끈이주걱 등 3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고 사는 끈끈이주걱은 아쉽게도 보지 못 했다. 과거 일본 학자는 우리나라에는 기후 조건이 고층습원이 생기기 어렵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랬기에 처음 용늪의 존재를 확인한 학술조사단은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만큼 용늪의 존재가 희귀한 것이었고, 더없이 중요한 생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후 대암산이 개방되더라도 용늪을 무분별하게 훼손한 과거의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패만한 판자가 정상임을 알려줘
대암산은 정상부가 큰 바위들로 이뤄져 있어 동네 주민들은 ‘대바우(큰 바위)’라 불러왔다.
문패만한 판자가 정상임을 알려준다.
용늪에서 나와 정상으로 향한다. 용늪에서 정상까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듯 싶었지만 울창한 숲 속으로 난 길은 꽤나 길었다. 길 안내는 ‘미확인지뢰지대’라는 표지판을 매단 주황색 빨래줄이 맡았다. 빨래줄 바깥에 있다가 어느 순간 안쪽에 들어간 것을 깨닫자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일행들은 지뢰에는 개의치 않고 “대암산이 원래 약초도 많고 아직도 심마니들이 찾을 정도로 산삼이 있다”거나 “이맘 때 쯤 빨간 열매가 열릴 텐데”라며 고개를 훼훼 저으며 산삼을 찾는 시늉을 한다.
산 이름처럼 큰 바위의 정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자꾸만 하늘 한 조각 보기 힘들 정도로 무성히 우거진 산 속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원시림이 뿜어내는 서늘함으로 땀을 흘려도 몸이 끈적거림 없이 상쾌하다. 성가신 날파리도 없어 즐겁게 지나는데 숲이 우거져선지, 습지가 있는 산이라 그런지 바닥이 질척거려 발걸음을 방해했다. 결국 경사가 조금 급해지자 주룩 미끄러져 앞 사람에게 절 하듯 바닥에 납작 엎어지기도 했다. 상처를 쓰다듬으며 마침내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 바로 앞에 커다란 바위덩어리들이 쌓인 곳이 정상으로 보였다. 최고봉이 도솔지맥 능선에서 동쪽으로 살짝 벗어나 솟은 탓에 양구 팔랑리 쪽에서 바라보면 그저 한 일자로 그어진 육산의 마루금만 보인다. “정상에 큰 바위가 있어서 대바우라 불렀다”는 주민들의 말은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이해가 된다.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 바위 위를 기어오르거나 뛰어 넘어야 했고 여기까지 올 동안 안내판 하나 보지 못 한 것이 걱정됐다.
“저 곳이 정상이 맞나요? 저 반대편 암봉이 더 높아 보이는데요?”
이형민씨도 박관우씨도 대암산 정상은 처음이라 정상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길 안내로 동행했는데 참…”하며 그만 웃어버릴 뿐. 정상이기를 바라며 일단 가보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조심조심 바위를 타 넘어 올라서니 반갑게도 ‘대암산 1304m’라 쓰인 나무판자가 바위에 기대져 있었다. 반대편 암봉을 또 오를 뻔 했기에 무엇보다 반가운데다 명패만한 크기의 작은 나무판자지만 그보다 멋진 정상표지판이 없는 듯 했다. 정상바위는 네댓 명 둘러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너르다. 시야는 사방팔방 확 틔었으나 안개가 둘러싼 탓에 인제군 쪽 마을만 간신히 보일 뿐이다. 날씨가 좋다면 남동쪽으로 설악산도 지척일 테고, 도솔지맥의 산줄기를 따라 멀리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면도 볼 수 있을 텐데. 인간의 힘으로 날씨를 변화시킬 재주가 없으니 다리쉼을 하며 혹시나 하며 기다려본다. 바람과는 다르게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듯해 하산을 서두른다. 오를 때는 길을 찾느라 1시간이 걸렸지만 내려가는 길은 30분이 채 안 걸렸다.
대암산은 정상부만 바위로 이뤄졌을 뿐, 사람의 발길이 제한되어 산림이 잘 보존된 육산이다.
해안면은 바다와 상관없다
다시 용늪에 도착해 도솔산 능선을 탄다. 산행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이었지만 벌써 1시를 훌쩍 넘었다. 산행종점인 도솔산전투위령비까지는 5km남짓 거리. KBS중계기지를 지나면 허리춤에 못 미치는 수풀 사이로 야트막한 오르내리막이 이어진다. 이형민씨에게 물어 길가에 흔한 ‘노루오줌’과 ‘쥐오줌’ 꽃들을 비롯해 야생화의 이름을 서너 개 정도 익혔다. 걷다가 “저건 쥐오줌이죠?”라고 알은체를 했다. 이형민씨의 대답은 “노루오줌”. 야생화의 이름들만 외었을 뿐, 꽃에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특징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분홍색 분홍 작은 꽃송이가 동그랗게 다발을 묶어놓은 듯 소담스러운 것은 쥐오줌, 자잘한 꽃들이 꽃대를 따라 보슬보슬 달린 것은 노루오줌.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데다 자욱하던 안개가 점차 걷히기 시작하면서 해안면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이라고 하면 동해안, 서해안처럼 바다를 연상하기 쉽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 해발 400∼500m의 고지대에 발달한 분지인 해안면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자를 쓴다. 이 지명에 관련된 설화가 내려온다. 옛날 옛적에 이곳은 해발 600m까지 물이 차 있었다고 한다. 그때의 습한 기운이 남아있어서 이 마을에는 뱀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뱀을 퇴치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한 스님이 마을에 뱀과 상극인 돼지를 기르라고 했다. 그 말 대로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자 돼지가 뱀들을 다 잡아 먹어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면은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의 눈에 비친 분지가 화채그릇같다고 해서 펀치볼이라 부른 것이다. 실제로 둥그렇게 산으로 둘러싸여 움푹 팬 모습이 국그릇 같다. 일반적으로 해안면은 차별침식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단한 편마암과 무른 화강암이 풍화와 침식되는 정도가 달라 해안면만이 주위와 달리 움푹 패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온 운석이 지면과 충돌하여 그 충격으로 파인 큰 웅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눈앞으로 산줄기가 도솔산을 넘고 대우산을 넘어 하늘에 닿을 듯하다. 그 푸른 빛 가득한 산 능선 위에 군사도로가 흰 선을 그어 놓았다. 그와 함께 ‘지뢰’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벙커를 통과하는 등산로, 능선 위에 자리한 군부대 등은 도솔산에 남은 치열했던 전쟁의 얼룩이다. 눈높이에 도솔산 정상이 보이지만 등산로는 아래로 내려섰다 다시 오르기를 요구한다. 부드러운 흙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바위가 툭툭 불거졌다.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니 해안면이 바로 코앞이다. 도솔산 정상에는 전투위령비 외에도 도솔산에서 바라보는 펀치볼 파노라마 사진 안내판이 있었다. 맞은편에는 금강산의 비쭉한 봉우리들까지 보여야 하지만 뿌연 하늘에 그저 방향에 따라 어림짐작해볼 뿐이다.
한국전쟁이 발생한지 60년이 지났지만 민통선도 아닌 대암산을 오르기 위해 군부대를 통과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대체 얼마나 지나야 사람의 발도 휴전선을 넘어 북녘으로 거침없는 산자락을 따라 아무 제지 없이 달릴 수 있을까. ⓜ
도솔산 정상 직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안면 일대. 우묵한 분지 형태가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