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여관방. 담배에 절은 내와 하수구 냄새가 훅 올라온다. 이곳이 4월까지 이상은(가명, 32) 씨와 딸 예나(가명, 2)가 지내야 하는 곳이다. 몸 하나 누이면 끝인 공간이지만 추위도 가시지 않은 초 봄, 몸 따뜻하게 지낼 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여기서 어떻게 식사 해결하셔요?” “아, 그냥 밥에 김치 해서 먹는거죠. 이번 달에 반찬을 못 사먹었네요. 돈이 없어서…….”
예나 병원비로 30만원이 깨지고 나니 생활비가 전혀 없다. 잔병치레가 많은 예나는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꼭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응급실 갈 돈이 없어 밤새 아이를 어르고 달래 첫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간다. 예나가 다니던 병원이라 조금 더 싸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땐 빚을 내어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 수급비는 월세를 빼면 대부분 예나 병원비다.
항문폐쇄증으로 태어난 예나. 한달 기저귀 값만 10만원이 넘게 든다. 하루에 열 번은 설사를 하니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아 기저귀를 갈 때마다 씻겨야 한다. 장운동이 약해 장 속에는 항상 변이 돌덩이처럼 뭉쳐있어 변을 무르게 하는 약을 꼭 먹어야 한다. 배앓이가 그칠 날이 없고 아이가 아파한다 싶으면 병원에 가서 매번 손으로 파내준다. 아파하는 딸을 바라만 봐야 하는 엄마. “얼마 전에 병원에 갔을 땐 피가 정말 심하게 나서…….”
엄마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딸과 단 둘뿐이란 사실은 엄마가 슬픔에 잠겨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임신중독증으로 30kg이나 급격히 쪄서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신경성만성두통에 시달려도 내 몸 아픈 것 보다 예나가 아픈 게 먼저고 내 먹을 것, 입을 것보다 예나가 먹을 것, 입을 것이 먼저인 엄마 상은 씨.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애쓰지만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연동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장을 잘라내는 수술과 세 차례 더 남은 항문조형수술비는 도대체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