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이 있으면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고혈압이 대사질환 외에 다른 질병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뇌의 노화 빨리 진행돼
30·40대에 고혈압이 있으면 나이가 들어서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찰스 데칼리 교수팀이 30~40대 남성 579명을 대상으로 고혈압과 뇌 기능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다. 데칼리 교수팀이 혈압을 측정하고 뇌 MRI를 찍었더니, 혈압이 140/90mmHg(수축기 140, 이완기 90) 이상인 고혈압 환자가 정상인 사람보다 뇌의 노화가 7.2년 빨랐고, 인지기능과 관련된 뇌 부위의 면적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을지병원 신경과 김병건 교수는 "혈압이 높으면 모든 혈관이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빨리 망가지는데, 수많은 혈관으로 이뤄져 있는 뇌 역시 혈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나중에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고혈압을 앓으면 뇌 혈관의 기능이 쉽게 망가진다. 이 때문에 30~40대 고혈압 환자는 나이가 들어서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경희대병원 심장혈관센터 김우식 교수는 "30~40대부터 고혈압을 앓다가 10~15년이 지나면 뇌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조기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므로, 빨리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고혈압약을 빨리 복용할수록 혈관에 가는 부담이 줄어 그 기능이 개선되기 때문에, 약을 줄이거나 끊을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혈관 늘어나 심방세동 생기기도
수축기혈압이 약간만 높아도 심장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을 조심해야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아이린 그룬드볼드 교수팀이 40~59세 남성 1758명을 대상으로 35년에 걸쳐 혈압과 심방세동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총 270명에게서 심방세동이 발생했는데, 수축기혈압이 128mmHg 미만(정상)인 그룹에 비해 128~139mmHg 그룹의 수가 1.5배, 140mmHg 이상(고혈압)인 그룹의 수가 1.6배였다. 고혈압은 아니면서 수축기혈압이 120mmHg를 넘으면 '고혈압 전단계'로 본다. 김우식 교수는 "고혈압 전단계일 때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심장혈관이 늘어나면서 심방세동을 유발한다"며 "따라서 운동, 싱겁게 먹기, 체중 조절 등 생활습관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