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작은 초등학교에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제주올레 첫번째 길인 시흥~광치기 해변을 걷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내디뎠던 발걸음이 전국적인 걷기 열풍의 시초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제주올레길은 5년 만인 지난해 11월 마지막 코스를 개장,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전체 26개 코스 422㎞를 완성했다. 제주올레는 한해 100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느림의 미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전국적으로 올레길과 유사한 둘레길 등 다양한 도보길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의 도보길이 595개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가을의 문턱, 일상을 던져두고 길위에서 길을 찾는 화두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걸을 수 있는 전국의 둘레길을 찾아봤다.
하루 평균 7시간, 한달을 꼬박 걸어야 '정복'할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은 5개 시·군 117개 마을에 걸쳐 있다. 전국에서 몰린 등산객들이 초가을 경치를 만끽하며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 함양군 제공
▲ 산과 바다 어우러진 아라메길, 경사 완만해 노인·여성 많아
부산의 자연을 잇는 갈맷길, 게스트하우스 붐 일으켜
117개 마을 걸친 지리산 둘레길, 논둑길·고갯길 등 옛 정취 느껴
■ 서산 아라메길 88㎞ '명품길'
걷기 열풍이 불면서 인천에는 녹지축을 중심으로 141㎞의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인천 둘레길은 계양구 계양산과 연수구 봉재산을 잇는 85.1㎞ 구간. 테마별로 소래포구~도원역의 해안 둘레길, 월미공원~월미문화거리의 월미산 둘레길, 인천대공원~소래습지생태공원의 누리 둘레길이 조성됐다. 강화 나들길 16코스 260㎞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꾸며졌다.
대전에서는 대전둘레산길이 걷기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보문산~식장산~계족산~
구봉산 등 대전 주변의 산을 하나로 연결한 133㎞에 12개 구간으로 구성됐다. 대전둘레산길을 1구간부터 12구간까지 순서대로 도는 경우 왼쪽으로는 대전 시내를, 오른쪽으로는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호수 등 자연을 볼 수 있다. 길은 험하지 않다. 해발 579m의 식장산이 가장 높은 봉우리다. 2구간에서 4구간까지는 비교적 힘들다.
충남 서산의 친환경 도보길인 아라메길은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애호가들까지 몰리는 인기구간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을 둘러볼 수 있는 88㎞ 길이의 명품길이다. 경사가 완만해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도 많이 찾는다.
충북의 대표적 둘레길은 괴산군 산막이 옛길과 제천시 청풍호 자드락길이다. 산막이 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총 4㎞의 옛길이다. 청풍호 자드락길은 청풍호를 둘러싼 산간마을을 중심으로 7개 구간의 산책로 58㎞로 이뤄졌다.
강원도는 동해안권, DMZ권, 남한강권, 북한강권, 백두대간권 등 5대 권역에 산소길 73개소 786㎞를 조성했다. 이중 대관령 옛길을 포함해 16개 구간으로 구성된 강릉 바우길과 화천 북한강 명품 산소길이 인기가 높다.
용화산의 원시림을 지나는 터널방식의 흙길과 부교 형식의 강상도로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대전 보문산~구봉산에 개설된 둘레산길.
■ 부산 갈맷길 답사하려면 86시간
부산시는 2009년부터 628억원을 투입해 단절된 숲, 해안, 강변길을 연결했다. 모두 9개 코스에 20개 구간 263.8㎞다. 가장 짧은 코스는 5.7㎞(해운대 문탠로드~수영구 민락교), 가장 긴 코스는 23㎞(구포역~성지곡수원지)다. 이를 모두 답사하려면 86시간 정도 걸린다. 갈맷길이 생기면서 부산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울산의 대표적 길은 울산 어울길, 솔마루길,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을 꼽을 수 있다. 75㎞ 구간인 어울길은 울산 동구 월봉사에서 염포삼거리~북구 무룡산~천마산~십리대밭교~남구 선암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은 가지산, 신불산 등 울주군 일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29.7㎞를 5개 구간으로 나눠 개발했다.
경북 영덕의 블루로드는 탁 트인 바다, 동해의 세찬 파도가 빚어낸 기암괴석, 끝없이 이어진 백사장 등 동해의 속살을 즐길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다. 강구항에서 해맞이 공원, 축산항 죽도산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까지 50㎞에 이른다. 매달 보름에 가까운 토요일밤에 해맞이공원 일대를 걷는 블루로드 달맞이 여행도 진행된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따온
외씨버선길은 경북 청송·영양·봉화군과 강원 영월군의 마을길과 산길을 잇는다. 주왕산에서 관풍헌까지 13구간 240㎞로 산허리를 돌아서면 끊어질 듯 하던 길이 다시 좁다랗게 이어진다. 언뜻 버선의 선 모양을 닮았다.
경북 영덕 '블루로드'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 지리산 둘레길 돌려면 한달 소요
지리산 둘레길 274㎞ 구간을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 평균 7시간씩 한달쯤 걸린다. 지리산 둘레길은 경남 함양 23㎞, 산청 60㎞, 하동 68㎞, 전북 남원 46㎞, 전남 구례 77㎞ 등 모두 3개 도, 5개 시·군, 20개 읍·면, 117개 마을에 걸쳐있다. 옛길, 고갯길, 숲속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의 정취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산청군 구간은 남명 조식의 흔적을 찾고 지리산 동부능선 웅석봉 숲길을 가로지른다. 하동군 구간은 최치원, 청학동,
빨치산, 박경리의 < 토지 > 등의 문화가 흐르는 길이다. 구례군 구간은 구례와 하동을 넘나들던 고갯길의 원형이 남아있다. 남원시 구간은 백두대간을 지나고
동편제와 이성계의 전설이 넘실댄다.
아시아 첫 슬로시티인 청산도 슬로길은 해안선과 절벽, 마을길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도는 42.195㎞ 구간이다. 11개 코스를 이어 걸으면 14시간이 걸린다.
황톳길 언덕에는 서편제 촬영지, 드라마 < 봄의 왈츠 > 세트장도 나온다. 독특한 장례문화의 상징인 초분도 볼 수 있다.
광주 무돌길은 무등산 자락이 품고 있는 광주시와 담양군, 화순군을 잇는다. 51.8㎞ 구간으로 18시간이 걸린다. 도심에서 가깝고 무등산 자락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