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피로감이 심하고 주름도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인 정모(53·서울 노원구)씨.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과연 맞아도 안전한지 확신이 들지 않은데다 비용도 비싸다는 이유로 정씨는 주사 맞기를 포기했다. 아이들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으로만 알았던 성장호르몬이 어떤 역할을 하길래 일부 40·50대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것일까. 성장호르몬이 기대한 만큼 효과가 있는 것일까.
↑ [조선일보]의욕 상실·피부 탄력 감소·체지방량 증가 등 중·장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신체 변화를 막기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결핍증 환자가 아니면 굳이 맞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많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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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분해하고 자신감 갖게 해성장호르몬은 뇌하수체에서 평생 분비되며, 단백질 합성과 지방 분해를 한다. 성장호르몬 덕분에 소아·청소년기에는 뼈·연골·근육이 자라고, 성인이 돼서도 근력콜라겐량·골밀도 등이 일정 수준 유지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는 자신감을 느끼거나 의욕을 갖도록 돕는다.
성장호르몬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분비량이 줄어든다. 20대에 가장 많이 분비되다가 이후 10년마다 14.4%씩 감소, 60대에는 20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성장호르몬 감소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질병이 아닌 것이다. 뇌하수체에 종양, 염증이 생겼거나 뇌하수체 절제술을 받았을 경우 젊더라도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적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1만 명 중 한 명 꼴로 드물다.
나이가 들어 성장호르몬이 적어지면 체내 단백질 합성이 잘 안되기 때문에 근육량·골밀도·콜라겐이 준다. 또 지방 분해가 잘 안돼 체지방량이 늘고 복부비만이 생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의욕 상실·기억력 저하·우울·불안감을 겪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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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증 환자 치료가 목적성장호르몬 주사의 기본 목적은 '성장호르몬 결핍증' 환자 치료다. 성인은 연령과 상관 없이 저혈당 자극검사를 했을 때 혈중 성장호르몬 농도가 5ng/mL 미만이면 성장호르몬 결핍증으로 진단하는데, 소아 때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걸리면 저신장증(키가 안 자라는 것)을 겪고, 성인의 경우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진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아닌 40·50대 여성들이 이 주사를 맞는 것은 주로 기력회복, 피부미용, 체지방 감량을 위해서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체지방량이 감소한다는 등의 일부 연구 결과를 강조하며 주사를 맞도록 권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정윤석 교수는 "기존의 연구 대부분은 실험 대상자가 적어서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정 교수는 또 "성장호르몬 주사로 인해 관절통·두통·부종 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건강보험 적용이 안돼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결핍증 환자가 아니라면 굳이 맞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주름과 체지방량이 갑자기 늘거나 피로감이 심하다면 우선 영양 결핍·당뇨병·갑상선질환고지혈증 등이 없는지, 성호르몬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정 교수는 "사실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 10명 중 9명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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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20분, 잠은 4시간 이상운동·숙면·단백질 섭취 등은 성장호르몬 분비량 감소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 숨이 찰 정도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은 한 번에 20분 이상 해야 한다. 운동을 시작한 지 최소 20분이 지나면 성장호르몬 수치가 일시적으로 높아진다. 밤 12부터 새벽 2시 사이에는 잠을 꼭 자는 게 좋다. 에이지클리닉 권용욱 원장은 "특히 잠들고 두 시간 후, 잠에서 깨기 두 시간 전에는 성장호르몬이 안 나온다"며 "한 번 잘 때 최소 4시간 이상은 자야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된다"고 말했다. 아미노산의 하나인 알기닌이 많이 든 소고기, 전복, 깨, 마 등을 먹는 것도 일시적으로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권용욱 원장은 "이러한 생활습관을 3~6개월 정도 유지하면 떨어진 성장호르몬 수치를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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